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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산 온천여행
등록일 2018. 12. 08 조회수 1,434

 

 

 겨울의 시작 12월에는 부산 온천여행을 추천한다. 위치적으로 남쪽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한데다 힐링 명소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부산시민이 꾸준히 찾는 것은 물론, 관광객 역시 휴식여행지로 선호하는 추세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부산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으로 떠나자.

① 동래온천

동래온천의 역사는 1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학전설에 따르면, 동래 고을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절름발이 노파가 우연히 논에 백학 한 마리가 날아와 절룩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에는 이상하게도 다리를 절지 않고 그 근처를 몇 바퀴나 돌다가 기쁜 듯 힘차게 날아가 버렸다. 신기함에 학이 머물던 자리에 가보니 따끈따끈한 샘이 있었다. 노파는 ‘나도 이 물에 다리를 담가 보아야겠다. 아마 이것이 다리를 고쳐주는 약천이구나.’ 중얼거리며 절름거리는 다리에 몇 십 번이고 약수를 찍어 발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효험이 발생하더니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에 이 샘을 온천이라 불렀고, 병이 있는 사람은 모두 동래를 찾았다고 한다.

682년(신라 신문왕 2) 충원공이 동래온천정에서 목욕을 했다는 <삼국유사>, 712년(선덕왕 11)이 4월에 온천으로 행차했다는 <삼국사기>, 1530년 <동국여지승람>에는 동래온천은 수온은 계란이 익을 정도로 뜨겁고 병자가 목욕하면 바로 나았으며, 신라시대에는 왕이 여러 번 여기에 와서 돌을 쌓고 네 모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웠는데 그 구멍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76년에 개항하자마자 돈 있는 일본인이 동래온천에 투자해 근대식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1907년부터 영업한 봉래관. 온천, 숙박 뿐 아니라 인공연못을 갖춘 동래온천 최고의 시설이었으며, 일본인을 위해 전차표와 온천비를 포함한 관광상품을 판매할 정도였다니 그 우수성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동래온천은 전차종점부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부터 부산진에서 온천장 입구까지 경편철도(증기기관차)를 운행하다 일본인에 의해 동래온천이 근대적인 온천으로 개발되던 1915년 11월 1일 부산우편국에서 온천교 입구까지 다니는 전차로 교체하며 더욱 번창한다. 10여 년간 동래온천을 가기 위해 온천교 입구에서 인력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동하느라 불편했는데, 1927년 10월 말 전차 선로가 온천장까지 연장되어 접근성이 향상된 덕분에 찾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승용차, 택시, 시내버스 등 경쟁 교통수단이 발달됨에 반해 전차는 노후화와 느린 속도, 서민의 발이라는 이유로 요금이 계속 동결되는 등 적자운행을 거듭한 끝에 결국 1968년 5월 20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할아버지상(김성환 화백이 그린 고바우 영감과 비슷하다고 해서 고바우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함)이 유독 눈에 띈다.

1926년 전차 운행 당시에 전차종점에 세워졌으며, 두 눈에 전구가 설치되어 종점 주변을 밝게 비추었다는 이야기로 보아 일제가 동래온천을 홍보하려고 만든 조형물로 판단된다. 현재 호텔농심 앞에 세워져있다.

스파윤슬길은 온천의 ‘스파’와 해와 달이 비쳐 물결이 반짝인다는 의미의 ‘윤슬’을 합쳐 지은 이름으로써 실개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끝은 동래온천 노천족탕(제1족욕장)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 무료이니 부담 없이 족욕 해보자. 인체 12경락의 중요한 혈들이 모여 있어서 '제2의 심장'이라 부르는 발과 발목 주변의 근육과 관절을 뜨거운 물로 자극하면 전신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져서 발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제1족욕장 운영시간 10:00~16:00 휴일은 수, 금요일, 동절기 기준).

만약, 노천족탕이 휴일이라면 동래스파토피아(제2족욕장)을 이용하면 된다(운영시간은 10:00~16:00, 휴일은 화요일, 동절기 기준)

바로 옆에는 동래온천의 역사를 소개한 온정개건비와 용각이 자리해 있다. 1766년(조선 영조41) 동래부사 강필리가 동래온천을 정비하여 수량이 풍부한 새 온정을 뚫고 남여탕을 구분하여 아홉 칸의 목욕탕을 건립했는데 그 공적은 용각의 온정개건비에 기록되어 있다.

1691년 숙종 17년 동래부사 김홍복이 온정을 관리하는 ‘온정가’를 세우고 매년 음력 9월 9일이 되면 온천수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기를 기원하며 용왕께 제향을 올리고 있다.

동래온천의 수온은 평균 65℃로써 온천물을 식혀 사용하는 약알카리성 식염천이다. 염소 성분과 마그네슘 성분이 풍부하여 소화불량, 피로회복 등에 효과가 탁월하다.

온천 체험에 앞서 마크를 주목하면 여행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일반 숙박업소나 목욕탕이 아닌 진짜 온천수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별 방법은 쉽다. 예전의 빨간 색상의 마크가 아니라 가족, 사랑, 건강을 형상화한 푸른색 계통의 온천 전용마크를 확인하면 그만.

동래온천은 최대 3,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허심청을 비롯해 총 27여 곳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온천공으로 직접 암반을 뚫어서 고온(65~73℃)으로 펄펄 끓는 천연 온천수를 공급하는 금천파크온천은 2017년 5월 3일 개봉한 영화 <보안관>(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출연)에서 공중탕 목욕 장면이 촬영되어 유명해졌다.

공중탕에서 온천을 제대로 체험하려면 온천물에 찬물을 혼합하면 온천의 효력이 떨어지니 순수 온천물로 목욕을 하는 것이 좋으며, 목욕을 마치고 나갈 때 찬물로 샤워하는 것보다 저온탕이나 고온탕에 몸을 헹구고 나가면 온천효과가 증대된다.

일행과 특별한 온천체험을 하고 싶다면, 가족탕을 이용해보자. 독립된 객실에서 편안히 쉬며 온천탕을 시간 및 횟수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에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절로 건강해진다.

② 해운대온천

해운대온천은 구남벌 저습지 갈대밭(현 해운대구청-운촌마을 구간) 가운데 웅덩이에서 온천이 솟아난다고 해서 구남온천이라 불렸으며, 신라 51대 진성여왕(887~897)이 어린 시절에 마마병(천연두)을 앓았는데 구남 웅덩이에서 온천욕을 한 뒤 씻은 듯이 나아 이후 귀족들의 행차가 늘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효험 때문에 청사포 갯마을의 나환자나 주변의 피부병 환자들이 몰려들어 웅덩이가 난장판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은 병원이었던 이 웅덩이가 이렇게 되어서야 하겠나 하며 폭우가 내리던 날 홍수의 기회를 이용하여 몰래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매몰된 지 수백 년이 흘러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로 이주했다. 이 때 와타나베가 해운대에 와서 일본대마도지에 동래부와 기장현 경계에 온천이 매몰되어 있다는 기록을 근거로 마을을 다니며 조사하다가 갈대가 우거진 곳에 토질이 특이하여 깊게 파다가 온천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인 하야시는 1917년 해운대를 대표하는 온천여관 ‘해운각’을 설립했다. 이후 일본인 이라이하츠다로는 와다나베에게 온천발견권을 양수받아 1923년 해운대온천합자회사를 설립하고 황정여관을 건립하여 운영하다가 조일여관으로 개명했다. 시추기로 온천수로 굴착한 온천 제1호정(해운대 공중목욕탕 부근)에서 많은 온천수가 분출하여 각 업소에 공급하다가 제2호정(현 해운대양수장 부근)을 발굴했는데 더 많은 양의 온천수가 용출되어 조일여관을 해운대온천호텔(국제호텔)로 개명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또한 1923년 해운대온천합자회사에서는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해운대에서 부산진간 19인승 대형 자동차를 운행했는데 1927년 해운대에서 기장은 하루에 2회, 1928년에는 해운대에서 동래를 하루 4번씩 다녔다. 이후 1937년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1938년 부산 소재 경남여객회사에서 해운대 영업소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대형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부산, 동래, 기장 방면으로 운행하며 교통접근성이 대폭 개선되어 일본 왕족, 총독 및 고관,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1965년 해운대해수욕장 개장, 1966년 극동호텔이 생기면서 해운대는 관광 명승지로써 발전을 거듭했다.

온천 입구에 자리한 해운대 온천 상징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당시 온천풀장(수영장)의 원천을 개발했던 자리(해운대구청 정문)에 세워졌으며, 자연의 근원인 물과 돌을 조화시켜 온천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바로 옆은 해운대구청 온천 족욕장으로써 무료 족욕체험이 가능하다(운영시간 11:00~18:00 휴일은 일, 월요일, 동절기 기준)

만약 해운대해수욕장을 거닐고 있다면 해운대온천 족욕탕을 가보는 것도 좋다(운영시간 13:00~16:00 휴일은 월요일 동절기 기준)

해운대온천은 대한민국 온천중에서 유일하게 해안에 자리한 임해온천으로 여름철에는 해수욕과 온천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겨울에도 해변산책 후 온천욕을 즐기는 일석이조 여행의 대명사다.

수온은 45~63℃ 정도의 약알카리성 식염천이다. 장산 화산지형의 기반암인 안산암의 화학작용으로 생긴 지하수와 함께 염분이 포함되어 약간은 짭짤한 맛이 나며,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 등의 함유량은 전국 온천 중 최고 수준으로써 근육통, 빈혈,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해운대온천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송도탕, 센텀시티에 자리한 18개의 온천탕과 13개의 찜질체험 시설을 갖춘 신세계 스파랜드, 바다를 조망하는 힐스파 등 현재 10곳이 성업 중이다.

특히, 해운대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탕은 해운대구청 앞에 자리한 해운대온천탕(할매탕)이다.

11937년에 일본인이 건립한 공중온천탕은 남여탕으로 구분되어 타원형 욕조로 되어 있었다. 이후 2006년 철거되면서 상량판이 발견되었는데, 상량식 소화 10년(1935년) 4월 1일 가주 해운대온천조합이라는 글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해운대온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할매탕 자리에는 2006년 해운대온천센터가 들어서며 온천의 규모와 편의시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머니들이 자주 찾던 할매탕의 그리움이 남아있었다. 결국, 어르신들에게 옛 추억을 되돌려 드리고,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16년 해운대온천센터 옆에 할매탕이 개장하여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공중탕에서 목욕 후 건강해지는 효과에 힘입어 이용객은 할머니, 어머니, 아이. 그야말로 세대와 세대로 화수분처럼 이어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강점은 도심 속 휴양림 분위기의 가족탕(독탕)이 아닐까 싶다. 방이 6개라 예약은 필수, 2시간 단위로 이용할 수 있다.

독탕은 깨끗하다 못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청결을 자랑한다. 실제로 가족탕 전담 직원은 고객이 사용을 마치자마자 깔끔하게 대청소를 실시한다.

할매탕의 편안함과 치료효과는 입소문이 퍼진지 오래. 팔다리 통증과 관절염,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들이 아픈 부위를 물에 담그거나 아토피 증상이 심한 환자가 대중탕 이용이 어려운 까닭에 3개월간 독탕을 이용해서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할매탕의 효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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