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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란수도 부산을 아시나요?
등록일 2018. 12. 18 조회수 120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대단한 기세로 내려온 북한군과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이자 구세주 같은 존재였던 부산은 1,0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활약했다. 특히, 피란수도의 역사를 간직한 유산 8곳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이 되었으며, 문화재청과 2025년 유네스코의 최종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11월에는 피란수도 부산 1023일(1950.8.18~10.27, 1951.1.4~1953.7.27)의 기억 속으로 역사여행을 떠난다.

① 경무대(현. 임시수도기념관)

임시수도기념관은 1926.8.10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건립된 2층 목조 일본식 주택이며, 6.25 한국전쟁 이후 1950.8부터 1953년까지 약 3년 동안 대통령 관저(경무대)로써 대한민국을 구하는 초석이 된 역사적인 장소다. 전쟁 후에는 다시 경남도지사의 관사였다가 1983.7 부산 부민동에 있던 경남도청(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창원으로 이전할 때 부산시에서 도지사 관사를 매입한 뒤 당시 대통령 관저로서의 역사성을 기리고자 1984.6.25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한 것이 현재에 이른다.

입구에서 고바우영감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이 종군하며 그린 작품 106점 <6.25 스케치>를 만난다. 봇짐을 메고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 앙상하게 헐벗은 폐허의 서울 등 전쟁 만화이야기는 다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할 이유를 설명해준다.

피란수도 부산 1023일의 역사는 임시수도기념관과 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쟁 당시 대한민국 통수권자의 최종 결정과 외교업무가 이루어진 응접실.

옆에는 각종 서적과 업무자료가 비치되어 있던 서재가 있다.

자개장과 반닫이, 함 등 생활가구가 비치된 내실은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머물렀으며, 이대통령의 가족, 경무대 근무자가 생활한 거실에는 임시수도 시절의 정치, 교육, 피란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미니어처가 있다.

증언의 방은 경비실이었으며, 특공대원으로 참전했던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방으로 꾸며졌다.

찬장과 식탁, 장식장과 식기류가 보이는 식당은 실제로 대통령, 가족, 직원이 식사했던 곳이다.

바로 뒤 건물은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 1987.9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로 사용되다 검찰청사의 이전으로 인해 영상관으로 개편하고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부는 전쟁의 발발과정을 설명하고 전쟁터로 아들을 보낸 아버지의 위문편지, 군번, 북한군 물통, 부산 피란민의 일상을 판잣집으로 재현했다.

원주민에 피란민까지 밀려들어 몸살을 앓은 부산은 어디든 붐비기 일쑤였다. 시끌벅적했던 국제시장, 부산 대표음식 밀면, 피란화가들의 생계를 도운 대한도기, 피란학교 등은 당시의 어려웠던 삶을 대변해준다.

각종 정치 사건과 임시수도의 정부부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도 구경해야 한다. 부산이 지금은 수도를 서울에 돌려주고 제2의 도시가 되었지만 임시수도 1,023일의 스토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다.

② 임시중앙청(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1925년 일제강점기에는 부산항의 중요성을 감안해 경상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며 1925.4 완공한 새 경상남도청사는 약 8,700평의 대지에 지어진 서구식 르네상스 양식과 비슷한 2층 붉은 벽돌 기와 건물이다.
6.25 한국전쟁 시절에는 임시중앙청으로써 피란민 대책, 경제원조 등 국가 재건을 책임졌던 정치, 경제중심지였으며, 전쟁 후 1984.11~2001.9까지 부산지방검찰청사로 사용 후 2009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개방했다.

석당박물관은 국보 2점[개국원종공신녹권(제69호), 동궐도(제249호)], 보물 12점[융기문 토기 등] 등 부산에서 가장 많은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물만 해도 3만 여점이 넘고 무료관람이 미안할 정도로 그 수준과 가치가 뛰어나다.

1층 토기 용기문발.

2층에서는 고고실, 도자실, 와전실, 불교미술실, 서화실(현재 공사 중), 민속실을 관람한다.

3층은 건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 경남도청사 건립에 목재를 공급한 회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묵서명, 증축도면, 공사비, 공사내용 관련 자료는 물론,

건설당시 사용된 벽돌, 석재, 기와 등 부재도 구경할 수 있다.

건설당시 사용된 벽돌, 석재, 기와 등 부재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전차를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운행하던 것을 1952년 무상으로 제공받아 운행한 실제 전차로써 처음에는 전깃줄 잡아먹고 달리는 괴물로 인식되었다가 없어서는 안 될 부산시민의 발로 탈바꿈했다.

③ 국립중앙관상대(현. 부산기상관측소)

1905.12.31에 준공되었다가 1934.1 지상 4층 규모로 개축했으며, 1948.2 국립중앙관상대 부산측우소로 활약한 뒤 1992년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되고, 2002년 옛 동래세무서 자리로 이전하며 기상 관측 업무만 실시하는 부산기상관측소로 운용되고 있다.

지상 4층 콘크리트 건물은 1934년 개축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며, 르네상스 기풍이 느껴진다. 외벽은 타일로 장식하고, 건물의 외관은 선박 형태로 꼭대기 층과 지붕은 선장실처럼 생긴 것이 특징. 옥상에서 부산타워와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조망이 압권이므로 뛰어난 관측기능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피란수도 당시에는 매일 매시 24회의 기상관측으로 군 작전 기상정보 및 해운업자와 어민들에게 유용한 기상정보를 발표하기도 했다.

④ 미국대사관 미국공보원(현. 부산근대역사관)

1910년 일제의 식민지 수탈기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마산출장소가 마산지점으로 승격 후 1921년 부산 대청동으로 이전하며 1929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만든 튼튼한 건물이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다. 1945년 해방 후 미군 주둔지 건물로 사용하고 1948.9 미국문화원으로 무상 임대했다. 한편 6.25 한국전쟁 기간에는 미국공보원(문화교류)과 외교창구의 미국대사관으로 두 가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다시 미국문화원 그리고 50년이 지난 1999.4.30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며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 2003.7.3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2층에 올라 부산의 근대개항, 일제의 부산수탈, 근대도시 부산을 조명하고,

3층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로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을 배운다.

이 외에 부산의 근대 거리를 재현해 놓은 포토존과 기획전시 사진으로 보는 근대여성의 일상도 볼만하다.

⑤ 부산항 제1부두(현. 부산항 제1부두)

부산항 제1부두는 길이 437m, 수심 9m, 접안능력은 1만 톤급 2척의 규모로 대한민국 근대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876.2.27 부산포라는 명칭으로 개항한 조선 최초의 근대 무역항이며, 1912.6.15 경부선 철도와 연결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시모노세키항을 연결했던 부두로써 일제의 대륙 침략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여객 및 물동량의 증가로 2~8부두, 연안여객부두, 국제여객부두, 크루즈부두 등 여객부두, 자성대 부두, 신선대 부두, 감만 부두, 신감만 부두, 우암 부두 등 콘테이너 전용부두 등이 차례로 생기고, 2010년 새롭게 부산신항을 오픈하며 역할이 다소 축소되었지만, 2005년부터 이어지는 북항 재개발 사업으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피란수도 시기에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각종 군수물자, 구호품, 생필품 등을 하역, 보급하고 200만 명 이상의 유엔군이 출입했던 병참기지였다. 무엇보다 부두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보존가치가 높다. (* 내부관람 불가)

⑥ 하야리아 기지(현. 부산시민공원)

1930.11 부산경마구락부에서 부산토지조합을 통해 서면 범전리 일대 토지를 수용하여 서면 경마장을 개설했으며, 1941.12~1945.8 태평양 전쟁기간에는 미얀마·인도네시아·필리핀 등에 조선 젊은이들을 징용보내기 위한 임시 훈련소, 전쟁 물자 야적장 등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1945.9.29부터 미군이 주둔시설로 이용하며 경마장 운영이 중단되었고, 1950.9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하야리아 부대)가 설치되었다.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주한 미군의 물자 및 무기 보급 관리 등의 전투 지원과 함께 유엔한국위원회, 유엔한국재건단 본부 등 유엔의 정치, 경제, 군사기구가 모인 복합 기지로 활약했다. 전쟁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위한 군수물자 보급창고와 부산권 미군 부대원들의 숙소로 사용했기에 부산 도심 한복판의 미국 영토나 다름없었다. 시민들의 불편함이 이어지며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전개하는 등 수 많은 노력 끝에 결국 2006.8 미군이 부산시에 돌려주고, 2014.5.1 부산시민공원으로 개장하여 침략과 지배, 전쟁과 피난, 분단으로 이어진 한국과 부산 근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부산시민공원 내 역사관에서 시대별로 확인할 수 있다.

2전시실은 하야리아 모형은 미군이 한반도에 진입한 과정을,

3전시실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하야리아 부대로 인해 탄생한 범전동 본동 자연마을 상권의 모습을 보며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⑦ 유엔지상군사령부(현. 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

6.25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부의 지휘본부이자 유엔지상군사령부(당시에는 미 8군 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함)로 사용되었던 워커하우스는 현재 부경대학교 학생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단순한 식당이지만 역사적으로 소중한 장소다. 6.25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50.9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이 금방이라도 둑이 무너질 듯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참모들은 삼랑진과 마산을 잇는 데이비드슨 라인으로 후퇴하자고 논의했으나 워커장군은 1950.9.4 그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9.6 사령부만 대구에서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으로 이전했다. 적군의 수중에 떨어지거나 파손되면 구하기 어려운 텔레타이프 통신장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넘어갈 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18일 동안 지프를 타고 낙동강 전선을 진두지휘했던 워커장군이 머물렀던 지휘본부는 마지막 버팀목이자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서울의 고급숙박시설로 손꼽히는 워커힐호텔이 그의 이름을 딴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워커하우스는 학생식당으로만 존재하기에는 아쉽다. 가능하다면 피란수도 당시의 사진을 준비하여 1950년대 분위기를 연출하고 개성만점의 작은 역사 전시관의 기능을 더한 테마카페로 변신하면 더욱 효과적인 문화재 관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⑧ 유엔묘지(현. 부산재한유엔기념공원)

6·25 한국전쟁 기간인 1951.1.18 유엔군 전사자 안장을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하고 같은 해 4월 완공하여 재한 유엔 기념 묘지로 개장했다. 전쟁 후 1955.11.7 대한민국 국회가 토지를 영구히 기증하고, 성지로 지정해 줄 것을 유엔에 건의했으며, 1955.12.15일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되었다. 1959.11.6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74.2.16일 관리 업무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에서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UNMCK]로 위임되어 현재에 이른다. 재한 유엔 기념 묘지였지만, 2001.3.3 대한민국 국민에게 더욱 친숙한 공간으로 가고자 재한 유엔 기념 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지원국 16개국(미국, 캐나다, 터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 의료지원국 5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스웨덴, 인도) 전사자 약 11,0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지만, 일부 국가는 전사자 유해를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하고 현재는 11개국 전몰장병 2,30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유엔기념공원을 관람하기 전에 추모관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을 관람하고, 전쟁 당시의 유품, 사진자료는 기념관에서 만난다.

공원은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지역 총 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상징구역은 21개 참전국과 태극기, 유엔기가 연중 게양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뉴질랜드,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1개국의 묘역이 자리해 있다. 대부분의 유해가 안장된 주묘역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의 묘지가 있다.

녹지지역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조각한 유엔군 위령탑이 설치되었고, 각국별 전투지원 내역과 전사자 숫자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내부는 제2기념관으로써 유가족이 제공한 안장자 사진 및 각종 자료를 특별 전시 중이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는 40,896명의 전사자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표기되어 있으며 참배객이면 누구나 들르는 코스로써 여기까지 구경하면 유엔묘지의 역사를 교과서보다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피란수도 유산은 8곳 외에도 우암동 소막마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등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잘 보존해야 할 부산의 향토사이자 대한민국의 근대역사이다. 또한 국내여행객 외에도 6.25 한국전쟁 참전국에게는 새로운 역사여행지로 제격이다.
11월에는 피란수도 부산 1023일(1950.8.18~10.27, 1951.1.4~1953.7.27) 기억 속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절대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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